신혼 초 강릉시립 교향악단 단원이던 나는 오 년 정도 아내와 주말 부부로 살았다.
주말이면 서울로 올라온 내게 아내는 그간 있었던 일을 한 보따리 풀어놓았다.
내가 없는 동안 일어난 일상을 어찌나 재미있게 이야기하는지, 그 이야기에 푹 빠져 헤어 나오기 싫을 정도였다.
마치 드라마를 몰아보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자정을 넘어서야 끝났다.
우리는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잠들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는, 여느 때와 다른 대화가 이어졌다.
늘 밝던 아내 얼굴에 표정이 없고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아내와 침대에 나란히 누워 대화를 이어갔다.
아내는 그동안 눌러두었던 마음과 홀로 감당했던 정신적 어려움을 조심스레 꺼냈다.
당시 아내는 셋째 사랑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제대로 몸조리도 못 한 채 이사를 해야 했다.
집 계약기간과 출산이 겹쳐 집주인에게 한 달 정도 여유를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하고 쫓겨나듯 이사하면서 아내에게 산후 우울증이 온 거였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무방비 상태였다.
항상 밝은 아내에게 찾아온 약간의 어려움 정도로 생각하고 대안을 말해 주고 싶었다.
만일 그때 아내 마음에 공감하며 듣기만 했어도 그녀의 마음이 풀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한마디 한 것이 화근이 되었다.
“자기야, 힘든 일이 있을 때는 기도해요.”
이 말이 폭탄이 될 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누가 모르냐고! 그냥, 내 말 좀 들어주면 안 돼!”
울음 섞인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문제가 엉켜버린 느낌이 들었다.
좀처럼 목소리를 높이지 않던 아내의 절규가 내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옳은 말이 아닌 ‘경청’이었다.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기만 해도 문제가 대부분 해결된다는 간단한 원리를 깨닫지 못해 갈등 상황이 벌어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가족 치료 전문가인 에머슨 에거리치는 “남자는 존경을, 여자는 사랑을 원한다”라고 말했다.
이 두 가지가 존중이라는 통로로 연결되며 조건 없이 이루어질 때, 관계의 질은 극대화된다.
아내가 사랑을 느끼는 지점은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때였다.
그런 아내에게 내 방식대로 문제를 해결해 주려는 내 ‘전능자 콤플렉스’가 화를 키웠다.
긴 침묵이 흘렀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동안 혼자 힘들었을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정말 미안했다. 아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미안했고, 정신적 어려움에 허우적거리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지 못해 미안했다.
겨우 상황을 추스르고 아내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미안해요.”
아내는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
큰 대가를 치르고서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배우자의 말에 들리는 대로 반응하지 않고, 말속 의미에 반응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말에 담긴 의도를 헤아리는 건 평안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핵심 자세다. 아내에게 필요한 건 ‘해결’이 아닌 마음의 짐을 함께 나누어 질 ‘남편’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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