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다.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우리의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주님이 새도 먹이고, 들에 피는 백합화도 입히는데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못 입히시겠냐며 말씀하신다.
그런데도 우리가 매일 걱정하고 염려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에 문제가 있는 것일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동안 우리의 시선이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내 관심이 세상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하지만, 정작 나의 삶에서 드러나는 내 관심사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를 했는데도
기도를 마치면 또다시 염려가 생기고,
염려하면서 ‘기도해야지, 염려하지 말아야지’ 하고 또 기도하고,
기도를 마치면 다시 또 염려하고. 기도 반 염려 반으로 사는 것이다.
꼭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공부할 때는 ‘아, 나 놀고 싶어’ 하고 놀 때는 ‘아, 나 공부해야 하는데’ 하면서
놀지도 못하고 공부도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한 가장 궁극적인 방법은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이 ‘두 주인을 섬기지 마라. 세상을 섬기지 마라. 너의 가치를 나에게 두라. 너의 생각을 나에게 두라’고 하신 말씀이 삶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염려하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다.
물론 일상의 염려에서 완벽하게 자유케 되지는 않겠지만,
우리 삶의 염려와 생각과 걱정과 관심이 하나님 앞에 놓여질 때,
나의 주인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실 때 우리 삶에는 세상 사람들과는 분명히 다른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것이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주님은 계속 말씀하신다.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보라.”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의가 이 땅에 나타나기를 위해 사는 사람들이다.
하나님나라를 위해 먹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자는, 하나님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의 것으로 염려하지 않는다.
보이는 것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놓지 않는다.
우리는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이 땅의 것에 우리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사는 것이다.
-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홍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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